검사는 자신의 주관이나 신념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법에 의해서 공명정대하게 판단하며 어느 검사든 판단이나 결과는 같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는 동일하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판사들도 동일체의 원칙은 따로 없지만 유추해석하면 검사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의지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한바 대로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국가는 법관들에게 국가의 권한을 대리하게 했다.
그러므로 법관은 국가에서 명하는 법률적인 판단과 결정을 국가를 대신해서 집행하는 대리인인 것이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는 의미도 법이라는 토대위에 그 법을 지켜야한다는 개인의 양심을 뜻하는 것으로 본다. 법을 무시하고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의미는 아닌 것이다. 양심은 법관에게만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피의자에게도 양심은 있는 것이다. 검사라면 법에 따라 구형을 하고 판사라면 법에 따라 판결을 하면 되는 것이다. 구형과 판결만이 법관이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이외의 사설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공부 많이 해서 법관이 되었다고 인격이 더 훌륭하다는 보장도 없을 뿐 아니라 세상만사의 이치들을 더 많이 안다고도 볼 수 없다. 피의자가 법 앞에서 약해지는 것을 기화로 이들에게 구구절절한 충고나 가르치려고 하는 자세도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검사는 법대로 구형하고 판사는 판결로 말하면 되는 것이다.
가끔은 판사들이 본분을 망각하고 재판정에 선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충고를 하는 경우가 있다. 판사는 선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르치려거나 충고와 같은 행위는 아주 교만한 것이다.
국민의 대표가 만든 법에 따라 이에 어긋나는 행위를 가려내고 그에 상응한 죄 값을 계량해서 선고하는 일이 판사가 하는 일이다.
최근에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씨가 국민참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주진우 기자는 공직선거법위반, 명예훼손과 사자에 의한 명예훼손에서 국민재판의 배심원단은 다수결로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장은 그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배심원단이 법리를 따질 능력이 되지 못한다고 보면 재판장은 법리를 따져서 판결을 했어야만 하는 일이다.
감정적인 평결을 할 수 밖에 없는 배심원단의 결정이 곧바로 재판의 결과가 되는 일이라면 판사의 역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판사무용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을 듯하다. 지난 8월, 부산지법에도 국민참여 재판이 열렸다.
역시 박근혜 후보를 비방한 전모씨에 대한 기소 건이었다. 배심원들은 만장일치로 유죄평결을 내렸다. 같은 사안임에도 배심원들의 평결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전주지법에서는 안도현 시인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유포에 대한 국민참여 재판에서 배심원 전원은 무죄평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일부에 대해 판결을 달리했다는 이유로 선고를 연기했다.
이렇게 되면 배심원단의 결정을 어떻게 해석해야하는지 애매하다. 법은 최후의 수단이다. 사회가 유지되고 국가가 건강하게 버티는 최후의 보루다. 이런 최후의 보루가 정치바람에 무너지고 있다.
국민참여 재판은 2010년 437건에서 지난해에는 737건으로 급증했다. 정치재판은 결코 국민참여 재판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법전대로 따져서 죄의 유무를 판단해야한다.
정치재판에 대한 국민참여 제도는 재판부의 불신을 자초하는 일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반범죄를 다루는 재판이라면 양형에 고려할 요소가 있을지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배심원들의 예민한 지적이 있을 수는 있을 것이다. 판사들이 권위를 인정받으려면 '법대로 원칙대로'라는 법의 정신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판사든 검사든 지역, 인맥, 학맥에 좌우되거나 변호사의 친소관계에 따른 구형이나 판결은 법의 정신을 갉아먹는 행위이다. 보수와 진보 혹은 정당에 따른 호, 불호가 법관들에게 적용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다. 안타깝게도 최근의 재판 진행상황을 보면 법의 권위가 현저히 실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판사들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