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 헌다의식 개최
상태바
기황후 헌다의식 개최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4.0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1일 오후1시 연천읍 상리 채궁마을

 기황후 헌다식을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고있다.
 
 이선옥 국제대학교 무용과교수 가 헌무를 하고있다.
21일 오후 1시  연천군 연천읍 상리 재궁마을의 기황후능에서는 한국 국제선차문화연구회, 월간(차의 세계), 행주기씨 대종중 주관, 주최로 약 70여명의 관계자 및 관람객들이 참석한 가운데 기황후 헌다의식이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연천문화원 이준용사무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헌다의 식 거행에 앞서 전 국제대학교 무용과 이선옥 교수가 기황후의 영혼을 부르는 헌무(獻舞)를 시작으로 헌향(獻香), 전 수덕사 주지인 옹산스님의 헌화(獻花)에 이어 기황후에 차를 올리는 순서로 행주기씨 대종회 기순홍회장의 헌다의식, 고유문 낭독과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올리는 헌다례에 이어 헌다시 낭송,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허흥식 명예교수와 유교문화연구소 기후탁 연구위원의 강연이 진행됐다.

흥식 교수는 강연에서 “고려와 몽골제국은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사에서도 찾기 어려운 장기간의 혼인동맹을 성공시켰다."며" 이것은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가침조약과 함께 동맹을 맺은 것으로 당시 원나라는 로마와 아랍권을 비롯한 전 세계를 정복한 강력한 국가로서 마음만 먹는다면 고려 정도는 일순간에 지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당시 세계에서도 찾기 어려운 왕실과 왕실간의 혼인동맹을 맺음으로서 일회성에 그치는 정략결혼이기 보다 수 십년간 이어져 온 하나의 전통을 이루게 되었다.” 고 그 중요성과 그로인해 고려가 한 주권국가로서 오래도록 지탱하게 된 원인이 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허흥식 교수는 이어 “다만 후세의 사관들이 원사(元史)(원나라에서 지은 책이 아닌 명나라를 건국한 후 몽골제국이 멸망하게 된 불가피성과 명나라의 건국을 선전하게 위해 명나라에서 급조한 사서)를 보고 조선초기 고려사를 서술할 때 이 원사를 그대로 베껴 써 서술함으로서 오늘날까지 잘못된 역사관으로 마치 전쟁에서 패하고 그 댓가로 고려의 아녀자를 공녀라는 이름으로 원나라에 공물을 바치듯 보냈던 것으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 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예로 끌려가서 노예생활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으나 당시 공녀라는 이름 자체도 없었고 원나라로 간 아녀자들의 신분은 미천한 신분이 아닌 고려의 고위층 자녀들로 원나라에 가서도 원나라 고위층과 혼인을 했다고 밝혔다.

허흥식 교수는 끝으로 “최근 모 방송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너무도 역사 왜곡이 심해 학자로서 정말 보기 민망스러울 정도” 라며 드라마라는 대중 매체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왜곡된 역사를 그대로 믿게 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는 즉각 시정되어야 할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밝혔다.

기황후는 최근 모 방송국의 드라마로 인기리에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으며 기황후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기황후의 묘로 추정되는 곳은 연천군 연천읍 상리 재궁동으로 이곳에서 수년전 발견된 기황후묘의 석인(石人)과 석수 2점이 현재 연천문화원 향토사료관에 보존 관리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