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밥보다 집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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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밥보다 집 밥이다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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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사회복지사

정석원 사회복지사
퇴근시간이 임박해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추과장, 커피 한 잔 할 시간돼?”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목소리는 친정아버지다. “아 네, 잘 계셨어요? 저녁이나 하지요” 추과장은 마침 저녁 약속이 비었다. 집으로 모시러 가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근무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예약시간을 맞추어야 한다며 서둘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갈 채비가 덜된 듯 머뭇거리신다.

추과장의 아버지는 독거노인이시다. 연(蓮)잎으로 만든 한정식을 드시자고 했다. 연밥은 단백질, 지방질이 풍부하여 건강에 좋다고 해서다. 피로회복과 노화방지에도 좋다. 하지만 식당 출입구로 이어지는 높지 않는 계단을 오르는데도 많이 불편해 하셨다.

식사는 제때 하시는지, 나이 들어 남들이 냄새난다고 할지 모르는데 목욕은 자주하는지, 노인정이나 복지관 같은데 나가서 사람들과 좀 사귀지 왜 허구한 날 집에만 계시는지, 작년에 사드린 외투는 왜 안 입는지, 제발 좀 시키는 대로 하시면 좋겠다고 다짐하듯 재촉했다. 결국 “남들 눈도 있는데 제 입장을 한번이라도 생각해보셨어요?”라고 종종거리고 말았다.

물론 추과장도 아버지의 대답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넋두리처럼 하는 말이다. 부친은 늘 가만히 듣고만 계신다. “자식이라고 하나있는 게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런지, 제대한지가 언젠데 취업도 안 되고....” 부친은 손자 이야기할 때만 잠깐 귀 기울이셨다. 요즘 세상이 어지간해야지 몹시 상심하시는 눈치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이다. 추과장은 음식이 많이 남아 속이 상한다. 모처럼 마련한 자리라서 더 그렇다. 그동안 쌓였던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감출수가 없다.

내 맘 편하자고 바깥 음식을 드시자고 한 게 죄송하다. 추과장도 내년이면 정년(停年)이다. 여느 부모처럼 부친도 그녀를 사람들 앞에서나 집에서 ‘추과장’이라 부르는 것을 좋아하셨다. 그 만큼 자식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런 자식이 보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다. 익숙지 못한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보다 집 밥을 편하게 드시며 외로움을 덜고 싶으셨을 것이다. 며칠 전 바람 쐬고 온다고 나간 아들은 아직도 연락이 없다.

삶이란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사회·심리적 고립은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큰 타격을 준다. 그래서 적어도 인간에게는 겉마음이라도 그리움을 나누는 대상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얼마 전 유명정치인이 언급했던 김현승의 시(詩) ‘아버지의 마음’ 중 일부다. 공교롭게도 수일 후 그는 아들 잘못으로 고개를 숙여 화재가 되었다.

많은 아이들을 태운 뱃길 참사에 이어 올여름에는 군폭력 문제로 한참 시끄러웠다. 이 땅의 부모들을 격하게 우울하게 했던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새삼 별 탈 없이 군(軍)생활 잘하고 나온 아들놈이 고맙다.

아버지의 낡은 전화기 맡에 자식들 전화번호가 얼룩져 겨우 붙어있다. 오래되어 묵은 벽지 탓만 아니다. 친정집 대추나무도 얼추 추과장 나이만해서 허리가 휘었다.
거두는 이가 없어 두어 평도 안 되는 뒤뜰에 널브러지듯 서있다. 그래도 생긴 열매가 가을햇살에 검붉게 타듯이 익어간다. 늙어 간다는 건 서러운 게 아니다.

보건복지 통계연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1인 가구가 2010년을 기준으로 이미 100만 명을 넘었다. 독거노인의 수는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지만 딱히 방도가 없다. 전체 노인인구 중 대략 4명 중 1명꼴이다. 더 큰 문제는 노인빈곤과 더불어 점점 고착되어가는 세대(世代)간 단절 현상이다.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거느린다.”는 말이 딱 맞다.

자신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건지 생각해본다. 그게 부모자식간이라도 말이다. 결국 채워야하는 것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래서 연밥보다 맘을 담은 집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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