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포장하고 증빙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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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포장하고 증빙하는 사회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4.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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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 연천군청 사회복지사

정석원 사회복지사
해마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준비하는 게 있다. 독거어르신 등 저소득층을 위한 김장나누기 행사다. 한 사회복지사의 탁상에는 월중행사로 김장지원만 해도 서류가 빼곡하다. 매주 쌓이고 있다.

행사 끝에 간혹 뒷말이 오고간다. “맛이 없다” “너무 짜서 결국은 버렸다”는 등 불편한 심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누구는 두통 세통 받았는데 자기는 겨우 하나밖에 안주니 서운하다는 분도 계신다. 보통의 경우 10kg 단위로 한 가구에 한 박스씩 나눠드리지만 여러 기관에서 김장나누기 행사를 하다 보니 가끔은 중복수혜자 가구가 나온다. 하지만 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이런 경우 불편한 마음의 행간을 읽어야한다.

‘사랑의 김장나누기’는 2001년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한 여사님의 아이디어로 시작되었다. 기업이나 자치단체의 사회적 공헌이라는 홍보가치와 맞물려 수년 만에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특별한 사람이 아닌 ‘누구나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는데 노둣돌 역할을 하였다. ‘나눔’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국민 밑바닥 정서까지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김치는 서민밥상에 매우 중요하다. 때문에 김장을 끝낸 날 주부들의 마음은 든든하다. 삶이 팍팍한 탓에 무채보다 엷어진 인정도 이 날 하루만큼은 넉넉해진다. 하지만 1인 가구의 증가, 2~3인 가구가 대부분인 요즈음 일반가정에서도 김장을 하는 경우가 줄고 있다. 여기서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보통의 경우 독거노인 가구를 제외하고는 김장김치에 대한 만족도가 해마다 떨어진다. 특히 올해같이 배추 값이 폭락했을 경우는 더하다. 김장나누기행사가 민간영역이긴 해도 재료비 등 상당한 공익자원이 투입된다. 이런 점에서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라 할 수 있다. 노년층이나 장애 등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한 분들조차도 선택권이 보다 자유로운 다른 방식(benefit in cash)을 선호한다.

미국정부가 빈곤층에게 식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인 '푸드 스탬프'(Food Stamp)만 해도 실제 신청자는 서비스대상자의 40% 정도에 불과하다. 낙인감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운영하는 차량은 기피한다. 차량에는 하나같이 잘 도장된 지원기관의 마크가 선명하다. 사회적 선의(善意)가 그들의 가슴에는 주홍글씨이다. 그래서 차를 타면 밖을 쳐다보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까닭이다.

특정물품의 구입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높게 드러내려는 소비자 욕구를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라 한다. 대개 남에게 보여 지는 것에 대해 민감한 소비자가 명품을 구매하는 것과 같다. 비합리적 소비행동이 주는 대가가 호되기도 하지만 심리적 만족감이란 달콤함을 멀리하기가 쉽지 않다. 불황속에 소비는 줄이더라도 자신을 위해 이 정도는 쓸 수 있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푸드뱅크나 복지관에서 공짜점심을 먹더라도 옷은 제대로 차려 입어야한다. 미장원에 가서 머리도 하고 상갓집 부조도 남들처럼 해야 한다. 경제적으로 아직 속이 차지 못한 젊음들이 컵 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러면서도 식후 브랜드커피에 텀블러, 쿠폰을 챙기는데 익숙하다. 독거 노령수급자들도 여간만 하면 집 전화에다 휴대폰을 가지고 계신다. 김치냉장고는 기본이다. 소득규모에 비해 다소 과하다 싶은 덩치 큰 가전제품을 안고 산다. 일종의 ‘복지 파노플리’라 할 수 있다.

이런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수치심을 완화할 수 있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다 가서 문지방 못 넘는다.”고 굳이 박스마다 돈 들여서 낙인을 찍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낮 뜨겁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사랑의 김장김치가 점점 소태 같아진다면 틀림없이 이런 이유에서다. 배급이 아니라 마음(carrying social services)을 정중히 담아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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