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을미년을 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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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을미년을 돌아보며...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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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호 의정부 보훈지청

오제호 의정부 보훈지청
을미년 새해가 밝은 작금은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이다.
이 땅에서 전쟁이 있은 지는 벌써 70년이 가까워져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또 그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 평화로운 시기에 굳이 아픈 기억을 떠올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北의 다소간의 위협은 있지만 전쟁이 없은지 반세기가 넘었고 북한은 민족화합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며 전쟁의 발발을 막아 줄 든든한 뒷배가 태평양 건너에서 그 위용을 떨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많은 돈을 들여서 전쟁에 대비할 필요도 없고 따분한 전쟁 이야기를 시시콜콜 외우고 다닐 이유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평화의 시기에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덜떨어진 구시대적 발상인 것이고 민족정기니 보훈이니 하는 것들은 글로벌 시대에 걸맞지 않은 국수주의의 소산인 것이다.

그렇다 2000년대 들어 처음 맞이한 을미의 해는 분명 평화의 시대이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어떠했던가? 우선 가장 가까운 1955년을 보면 6·25전쟁이 끝난 두 번째 해로 전쟁의 상흔이 전국토에 그대로 남아있던 해였다. 전쟁이 끝났으니 명목상으로는 평화의 시대라 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실질을 보자면 ‘평화로운’이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기는 어려운 해였다.

다음으로 1895년은 어떠한가? 척왜양창의의 기치를 내걸었던 민족구국운동은 전봉준의 교수형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대한민국의 국토는 청나라와 일본의 전장으로 활용되었으며, 당시 조선 왕조에서 가장 경계가 삼엄한 곳에서 국모가 일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치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론이 있기는 하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의 시작을 1895년으로 보는 것이 통설인데 이는 1895년이 일본에 정치적으로 예속되기 시작한 시기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다음으로 1835년을 보면 외환(外患)은 없었으되 극심한 내우(內憂)로 조선왕조에 암운이 한창 드리웠던 시대였다. 헌종의 즉위 이듬해로 풍양 조씨 일족이 일국의 정치를 농단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삼정의 문란으로 민심이 이반되어 조선이라는 국가의 근간이 뿌리에서부터 썩어 들어가던 시기였다.
시간을 거슬러서 1595년으로 가보면 당시는 임진왜란의 기간으로 조선의 국운이 경각에 이르렀던 시대였다. 또 1235년은 몽고의 제3차 침입이 있었던 시기로, 몽고군은 경주까지 남하하는 등 전국토를 유린하여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을미년은 우리에게 결코 좋게 기억될 수 없는 갑자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민족의 치욕적 역사가 을미년에 몰린 것은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민족적 치욕을 경험한 1895년, 1595년, 1235년의 앞 시기에 어떤 일이 있었고 우리 민족은 그에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이다. 몽고의 침입이 있기 전 고려왕조는 200년 이상 전쟁이 없어 무신을 극히 천시하였고 이는 무신의 난으로 이어져 고려왕조는 내부적으로 큰 혼란을 겪었다.
또 빈발했던 민란은 민심이 왕조로부터 이반되었음을 나타내 주는 징조였다. 임진왜란의 전 시기 또한 이와 유사하여 대몽항쟁 이후 200년 이상 외침을 받지 않아 1235년의 아픈 역사는 잊은 채 당쟁에만 골몰했던 것이 당시 위정자들 대부분의 행태였다.
이러한 을미년(1595) 왜란의 교훈을 잊은 채 400년의 평화 속에서 지난 두 번의 행태를 그대로 답습했던 우리 민족은 1895년의 치욕을 겪고 만 것이다. 덧붙이자면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乙’의 해가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의 국권은 피탈되었고 그로부터 5년 뒤에 또 한 번의 국치일을 만들기에 이른다.

거안사위(居安思危)라 했던가.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새천년의 첫 을미의 해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과거의 을미년이 어떠했는지, 또 그렇게 치욕스러운 을미년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신중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평화의 시대에 위기를 생각하여 그것을 대비하자는 것이 한편으로는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쟁의 고통과 치욕의 역사를 망각함으로써 수차례나 반복한 우리 민족의 과오를 제차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거안사위’라는 허무맹랑한 구호가 유리창 반대편의 입모양으로 끝나게 두어서는 안 된다.
전 국민의 마음속에 울려 퍼지는 거안사위의 구호로써(아픈 역사를 되새겨 봄으로써) 새천년 을미년의 첫 날이 다소 암울해질지언정 2000년대의 첫 을미년의 이름을 청사에 유취만년(遺臭萬年)하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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