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수 허목 선생의 “청백리 정신” 본받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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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 허목 선생의 “청백리 정신” 본받기 위한
  • 동두천.연천신문
  • 승인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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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군청 학습동아리 “미수사랑” 결성

 
 
 
연천군청 공무원들로 구성된 “미수사랑” 학습동아리가 11월 18일 결성되어 첫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의 주된 목적은 조선후기 정치와 사상계를 이끌어간 미수 허목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재조명하고 특히 그의 청백리 정신과 위대한 업적들을 익히고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다. “미수(眉叟)”는 허목의 호로서, 눈썹이 긴 노인이란 뜻으로 선생의 눈썹이 길어 스스로 '미수'라 칭한 것이다.

이날 김한섭 부군수와 군의원을 비롯한 회원 12인은 특히, 공무원으로서 미수 허목 선생이 펼치고자 했던 위민정신을 기초로 한 개혁안 등 선생의 위대함을 풀뿌리 현장에서 공감하고 앞으로 명품 행정 구현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들은 앞으로 월 1회 워크샵, 월 1회 미수 유적 답사를 진행하며 미수 선생에게 점점 다가갈 예정이다.

이 시대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큰 선비,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은 1657년 남들이 은퇴할 나이인 63세에 지금으로 하면 특채로서 감사원 서기관(지평(持平))으로 출사하여 국무총리(우의정) 까지 오른 역사 이래 유일한 분이다. 당시 17세기의 비상시국을 타개하기 위해 정치, 사상 등 다방면으로 새로운 정책대안 제시에 주력했다.

특히, 미수허목 선생은 연천 출신으로 연천군 왕징면 일대가 그의 오랜 세거지이며, 연천 곳곳에는 미수선생과 관련한 많은 유적이 남아있다. 왕징면에는 숙종 임금이 하사한 저택인 은거당이 있고, 미산면에는 미강서원이 세워져 허목의 학문과 사상이 널리 퍼졌으나 현재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터만 남아 있다.

동아리 활동에 산파역을 맡은 연천군 학예연구사 윤미숙 씨는 “미수 허목선생은 늦은 나이에 정계에 진출했음에도 자신의 소신과 원칙을 지키며 위민 정치를 실천한 공무원 대선배로서 특히, 청빈을 생활신조로 평생을 산 공무원으로서 본받을 점이 많다.
앞으로 적극적인 동아리 활동으로 미수학 연구 발전과 관련유적의 활용사업에 대한 참신한 정책 발굴 등을 통해 미수 선생을 널리 알리고, 연천지역이 미수학의 중심지, 실학의 출발지라는 연천군민의 자긍심을 높이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무원이 중심이 된 21세기 미수학의 창조적 계승으로 군민이 행복한 으뜸연천, 명품연천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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